
샌드위치.
이게 사람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혹시 나초는 어떨까요?
저는 그냥 멕시코 음식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카르파초는요?
이탈리아어로 얇게 썬 고기를 뜻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초도 사람 이름이고, 카르파초도 사람 이름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흔히 먹는 시저 샐러드의 ‘시저’도 사람 이름입니다.
알고 보면 메뉴판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자기 이름이 음식 이름이 되었느냐는 겁니다.
도박을 너무 좋아해서 이름을 남겼다는 귀족도 있고,
손님에게 급하게 음식을 만들어주다가 자기 별명이 음식 이름이 된 사람도 있고,
음식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림만 그렸는데 수백 년 뒤 갑자기 음식 이름이 된 화가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음식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1. 샌드위치 — 귀족 이름이 전 세계 점심 메뉴가 되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부터 만나봅시다.
존 몬태규(John Montagu).
18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귀족이었고,
그의 작위는
제4대 샌드위치 백작(Earl of Sandwich)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샌드위치는 원래 이 사람의 작위명입니다.
그런데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샌드위치 백작은 도박을 너무 좋아해서 카드판을 떠나지 않고 식사하기 위해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가져오게.”
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손에 묻히지 않고 한 손으로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나도 샌드위치가 먹는 것과 같은 걸 줘.”
라고 주문하면서 음식 이름이 샌드위치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완벽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일까요?
여기서부터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샌드위치라는 음식 형태를 존 몬태규가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빵이나 납작한 빵 사이에 음식을 넣어 먹는 방식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게다가 도박 때문에 식사를 안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확실하게 입증된 사실은 아닙니다.
1770년대 프랑스 여행작가 피에르장 그로슬레가 비슷한 일화를 기록하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상황을 과장하거나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1762년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의 일기에 이미 음식의 의미로 ‘Sandwich’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샌드위치 백작이 샌드위치를 발명했다 → X
그의 이름이 음식 이름 샌드위치의 기원이 됐다 → O
정도입니다.
어쨌든 존 몬태규는 죽은 지 2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오늘도 전 세계 사람들이 말합니다.
“샌드위치 하나 주세요.”
위대한 업적은 아니지만,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2. 나초 — 이건 진짜 사람 이름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더 놀라운 건 이쪽입니다.
나초(Nacho).
당연히 멕시코 음식 이름 같지 않습니까?
사실 나초는 스페인어권에서 Ignacio(이그나시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부르는 흔한 애칭입니다.
우리식으로 굳이 느낌을 옮기자면
이그나시오라는 사람이 있는데 친구들이
“나초야!”
하고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나초 뒤에는 실제로
이그나시오 ‘나초’ 아나야(Ignacio “Nacho” Anaya)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는 1943년.
멕시코 국경도시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의 한 식당에 미군 장병들의 아내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리사가 없었습니다.
배고픈 손님은 와 있고,
주방장은 없고.
난감한 상황입니다.
당시 식당에서 일하던 이그나시오 아나야가 직접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있는 재료를 찾아
토르티야를 자르고,
치즈를 얹고,
할라피뇨를 올려 간단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Nachos Especiales.
쉽게 말하면
‘나초의 스페셜 요리’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Nachos Especiales는 점점 줄어서
Nachos
가 됐고,
미국 텍사스를 거쳐 야구장과 경기장으로 퍼지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화관에서
“나초 하나 주세요.”
라고 주문하는 것은 사실상
“이그나시오 씨 하나 주세요.”
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름의 주인공 입장에서는 상당히 성공적인 메뉴 데뷔입니다.

3. 카르파초 — 이 사람은 요리사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더 황당합니다.
카르파초.
얇게 썬 생고기에 소스를 곁들이는 이탈리아 요리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요리사 카르파초 선생
같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화가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화가
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카르파초 본인은 이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16세기에 활동했던 사람이니까요.
음식 카르파초가 만들어진 것은 무려 1950년입니다.
베네치아의 유명한 Harry's Bar에서 주세페 치프리아니가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단골손님이었던 아말리아 나니 모체니고 백작부인이 의사로부터 익힌 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치프리아니가 얇게 썬 생고기에 소스를 곁들인 요리를 만들어줬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새 음식이 생겼으니 이름이 필요합니다.
마침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비토레 카르파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르파초의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붉은색과 흰색이 생고기와 밝은색 소스의 색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카르파초라고 하자.”
끝입니다.
화가가 요리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비토레 카르파초 입장에서는 황당합니다.
평생 그림을 그렸는데,
수백 년 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듣고
소고기를 떠올립니다.
화가로서 좋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4. 시저 샐러드 — 로마 황제와 아무 관계 없습니다
이번에는 이름 때문에 오해하기 딱 좋은 음식입니다.
Caesar Salad.
시저.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뭔가 고대 로마 황제가 먹던 샐러드 같지 않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시저 샐러드의 시저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아니라
시저 카르디니(Caesar Cardini)
라는 이탈리아계 식당 경영자의 이름입니다.
카르디니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그의 식당에서 오늘날의 시저 샐러드가 탄생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님이 몰려 주방 재료가 부족해지자,
남아 있던 재료를 활용해 즉석에서 샐러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 역시 음식 역사에서 흔히 그렇듯 누가 정확히 처음 만들었느냐를 놓고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카르디니의 동생이나 함께 일했던 사람이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름의 유래가 Caesar Cardini와 연결된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저 샐러드를 먹으면서
“로마 황제들도 이런 걸 먹었겠지.”
라고 생각했다면...
황제는 억울합니다.
그분과는 관계없습니다.

5. 피치 멜바 — 세계적인 스타에게 바친 디저트
이번에는 조금 우아한 이야기입니다.
피치 멜바(Pêche Melba).
복숭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라즈베리 소스를 이용한 디저트입니다.
여기서 Melba 역시 사람 이름입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호주 출신 오페라 가수
넬리 멜바(Nellie Melba).
그리고 이 디저트를 만든 사람은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입니다.
에스코피에는 멜바를 위해 복숭아와 아이스크림을 이용한 디저트를 만들었고, 이후 피치 멜바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에스코피에가 남긴 조리법에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복숭아에 라즈베리 퓌레를 곁들이며, 은제 그릇과 얼음 조각까지 언급할 정도로 화려한 디저트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헌정입니다.
보통 팬이라면
“공연 정말 잘 봤습니다.”
꽃을 줍니다.
편지를 씁니다.
에스코피에는 달랐습니다.
“디저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당신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먹습니다.
연예인에게 줄 수 있는 팬 선물 중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편입니다.

6. 음식 이름이 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쯤 되면 메뉴판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샌드위치에는
존 몬태규.
나초에는
이그나시오 아나야.
카르파초에는
비토레 카르파초.
시저 샐러드에는
시저 카르디니.
피치 멜바에는
넬리 멜바.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그 음식을 즐겼고,
누군가는 그냥 그림을 열심히 그렸을 뿐인데
어쩌다 음식 이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름을 사람이나 장소 등의 고유명사에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의미에서 에포님(eponym)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음식 세계에는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도시와 지역 이름이 음식이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햄버거는 독일 함부르크(Hamburg)와 연결되고,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 이름에서 왔으며,
고다 치즈 역시 네덜란드 하우다(Gouda)라는 도시 이름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음식의 이름에는 의외로 사람과 장소의 역사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음식에는 이런 이름이 많이 붙었을까?
생각해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멋진 브랜드명을 만들어줄 마케팅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만든 사람 이름을 붙입니다.
혹은
유명한 사람에게 헌정합니다.
혹은
만든 장소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음식이 유명해지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사람 → 음식
이었는데,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면
음식 → 사람
으로 인지도가 뒤집혀버립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Nacho’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그나시오 아나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보다 치즈 묻은 토르티야칩을 떠올리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카르파초 역시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르네상스 화가보다 생고기 요리를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자기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도,
동상을 세우는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맛있는 걸 하나 만드는 겁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HISTORY — The Story of the Sandwich
Smithsonian Magazine — The History of Baseball Stadium Nachos
SAVEUR — The World of Cipriani / Carpaccio
Smithsonian Magazine — Hail Caesar
Encyclopaedia Britannica — Nellie Me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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